★베르사이유 궁전에 없는 것(화장실)★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에 호화스런 궁전을 짓고 이를 바탕으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베르사이유 궁전이 완성되고 루이 14세가 이 궁전으로 옮겨 살게된 것은 1682년의 일이다. 루이 14세는 각 지방의영주들을 불러 이 궁전 안에서 살게 하였으므로 당시 이 궁전에는 약 5천 명이 살았다. 게란트 쓴 〈화장실 문화사〉를 보면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궁전을 출입했던 수 많은 귀족들이 그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상상하면 그저 아찔해질 뿐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물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이 비단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파리의 유명한 샤르르 가르니에의 오페라 하우스도 마찬가지이다. 관람객들은 몇 시간이건 변욕을 스스로 참아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각자가 용기를 지참하는 수 밖에 없었다. 루이 14세가 그때까지 살던 파리의 루블 궁전을 버리고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옮긴 이유도 루블 궁전이 오물로 뒤덮여 더 이상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왕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이외에는 베르사이유 궁전 안에 화장실이라고 부릴만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다 화려한 무도회가 열렸으니 이들은 부득이 정원의 꽃이나 잔디를 밟고 용무를 해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궁중 무도회에 초대된 귀족들은 휴대용 변기를 지참하여 생리적인 응급 대비를 하기도 했으나 오물을 비우는 일은 하인들의 몫이다. 이들이 오물을 버리는 곳 역시 으슥한 정원 구석이었고 궁에서 생활하는 궁신들의 배설 또한 이러했다고 하니 오물로 덮힌 궁전의 실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무도회에 참석할 때 여성들은 커다란 모피 주머니에 휴대용 그릇을 넣고 다녔다. 그것은 지름 25센티미터 정도의 길쭉한 도기로서 손잡이가 달린 것이었는데 하이리이스 소스를 담는 그릇같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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