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로마 제국
신성로마제국(독일어: Heiliges Römisches Reich, 神聖羅馬帝國)은 중세에서 근대 초까지 이어진 중부유럽 나라들의 정치 연방체이다. 프랑크 왕국이 베르됭 조약(843년)으로 나뉜 동쪽에서 독일 왕이 마자르족을 격퇴한 후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수여받아 신성 로마 제국 건국을 선포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은 초기에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으나, 점차 이탈리아에 대한 간섭으로 독일 지역에 소홀히 하면서 여러 제후들에 의해 분할 상태였다. 30년 전쟁이 일어난 나라로 유명하며, 30년 전쟁에 패배하여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많은 영토를 잃었다. 나중에는 프랑스의 공격을 받아 제국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프란츠 2세가 결국 제국 해체를 선언하였다. 그 후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워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왕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1918년까지 지속되었다. 18세기에는 지금의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슬로베니아,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포함해서 네덜란드의 대부분과 폴란드의 일부에 해당하는 영토를 유지했다. 한때는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전역, 프랑스, 이탈리아의 일부까지도 포함했었다. 844년(또는 1006년[1])간 지속된 장수 국가로 유명하다.
[편집] 명칭고대 로마 제국의 계승자를 자처하여, 11세기 무렵에는 "로마 제국(Römisches Reich)", 12세기 무렵에는 "신성 제국(Heiliges Reich)", 13세기 이후에는 "신성 로마 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이라고 칭하였다. 16세기에는 "도이치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독일어: Reich"는 "라틴어: imperium"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제국"을 의미한다. "신성"(神聖)이라는 형용사는 1157년에 프리드리히 1세가 제후들에게 발포한 소환장에서 처음 나타난다. 본래 고대 로마 제국이나 카롤루스의 프랑크 왕국의 후계자를 자처하였으므로, 이 정치체제의 군주는 정식으로 말하자면 초기에는 프랑크 국왕, 후에는 로마 국왕이며, 이 직함을 얻은 사람이 로마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여, 로마 황제로 취임했던 것이다.
[편집] 카롤링거 왕조 포함 여부800년 12월 25일 프랑크의 왕 샤를마뉴 1세가 로마에서 로마 교황 레오 3세로부터 로마 황제의 관을 수여받고 축성된 뒤 카롤로 아우구스토 로 선포된 이후를 시발점으로 삼는다. 이후 924년 베렝가리오 1세의 암살 이후 제관 수여는 일시 중단되었으며 962년 독일왕 오토 1세가 로마 교황 아가페투스 2세로부터 제관을 수여받았다.
학자에 따라서는 베렝가리오 1세의 사후 이탈리아의 군주들을 명목상의 신성 로마 황제로 간주하기도 하고, 일각에서는 것을 962년 독일왕 오토 1세가 로마 교황 아가페투스 2세로부터 제관을 받은 것을 시점으로 본다.
[편집] 실질적 권위그러나 후기로 접어들며 제국의 정식 명칭인 '신성 로마 제국'은 권위를 잃었다. 제국은 18세기까지도 '신성'이라는 수식어는 유지하려 노력하였으나, '로마'는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고, '독일 제국'으로 불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2]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신성 로마 제국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신성 로마 제국은 '신성'도, '로마'도, '제국'도 아닌 어떤 것이다. (프랑스어: Ce corps qui s'appelait et qui s'appelle encore le saint empire romain n'était en aucune manière ni saint, ni romain, ni empire.) [2] ”
1806년 8월 1일 레겐스부르크 제국회의에서 제국 해산을 결정할 때 나폴레옹 1세의 명을 받은 프랑스 공사는 이 제국을 그저 '독일 제국'이라고만 불렀다. 같은 달 6일 발표된 황제의 제국 해산 칙서에서도 '신성 로마'라는 말은 없었으며, 이 사실을 적은 한 신문기사는 '독일 제국 해산!'이라고 머릿기사를 땄다.[3] 이를 본 대문호 괴테는 일기에서 "신문 기사를 보았다. 독일 제국이 해산되었다."라고 적었다.[4]
금인칙서를 발표한 카를 4세는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국호를 황제 공식 문서에 가장 많이 사용한 황제이다.[5] 그런데 카를 4세의 치세 무렵 공문서는 라틴어뿐 아니라 독일어로도 작성되고 있었다. 카를 4세가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은 대개 독일어로 된 문서에서였고, 라틴어로 된 문서에서는 '로마'를 빼서 '신성제국'이라고만 하였다.[5]
[편집] 역사[편집] 영토신성 로마 제국의 강역은 현재의 프랑스 남동부에서 이탈리아 북부 일대까지 미치고 있었다. 제국은 독일 왕국, 이탈리아 왕국, 부르군트 왕국의 3국으로 크게 나눌 수 있었다. 이것은 카롤링거 왕조 시절 프랑크 국왕의 정식 칭호가 "프랑크인, 롬바르트인, 로마인의 보호자"인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각각 다른 장소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마지막으로 교황에 의해 로마 황제로 즉위하고, 제국 전체에 군림하였다. 다만 이 제국이 그 이름과 같이 실질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호엔슈타우펜 왕조까지였다.
신성 로마 제국은 오스만제국의 빈 공방전 이후 영토 일부를 얻었으나, 30년 전쟁 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많은 영토를 프랑스, 스웨덴에게 할양해 주어 프랑스, 스웨덴이 강성한 국가가 되었다. 제국 내에서는 전통적으로 제후들의 권한이 강했으며, 나중에 이 제후들이 제국을 탈퇴함으로써 황제가 해체를 선언해 신성로마제국은 라인 동맹,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나뉘어졌다. 이때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건국해 신성로마제국의 명예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오스트리아가 참전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여 합스부르크가 왕가는 완전히 소멸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황제로서 즉위하기 전에는 로마 국왕으로 불렸다. 교황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지 않았을 경우, 독일 왕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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