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공주(고려) 와 낙랑공주(낙랑군)
☆낙랑공주 (고려) :낙랑공주 왕씨(樂浪公主)는 태조 왕건과 제3왕후인 신명순성왕후(神明順成王后, 900년~?)의 사이에서 난 딸이며, 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이라고도 한다. 또한 그녀는 정종과 광종의 누이이기도 하다. 외조부는 태사내사령(太師內史令) 유긍달(劉兢達)이다.태조는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낙랑공주를 그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고려 왕실이 공주를 타성(他姓)과 혼인시킨 것은 특별한 예에 속하였다.그 소생으로 헌숙왕후(獻肅王后)가 있었다.
★낙랑공주 (낙랑군) : 낙랑공주 최씨, 낙랑부인(樂浪公主 崔氏,樂浪夫人 ? ~ 32년)는 중국 한나라 낙랑태수 최리(崔理)의 딸이다. 낙랑공주는 낙랑국의 공주라는 의미로 이름은 전하지 않으며 평강공주도 이와 마찬가지의 경우인데, '평강'이란 이름은 '평강상호왕(平崗上好王)'에서 따온 이름으로 '평강왕'은 그녀의 아버지인 평원왕의 다른 이름으로 쓰였으니 즉 평원왕의 딸이라는 의미로 평강공주라 기록된 것이다. 평강공주 역시 낙랑공주와 마찬가지로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버지 최리는 한나라의 관리로, 한군현의 하나인 낙랑군의 태수로 부임한다. 낙랑공주는 서기 32년(대무신왕 15년) 옥저(沃沮)에 놀러 왔다가 최리를 따라 낙랑에 온 고구려의 왕자 호동(好童)과 결혼하였다. 당시 낙랑에는 적이 침입해 오면 저절로 소리를 내어 그 사실을 알리는 자명고(自鳴鼓)와 자명각(自鳴角)이 있어 정복하기가 어려웠는데, 호동의 부탁으로 자명고와 자명각을 부수어 고구려가 낙랑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녀는 뒤늦게 사실을 안 아버지 최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최리는 공주를 죽인 후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자유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중국의 4대미인에 얽힌 얘기들 / 과장의 극치 (0) | 2011.09.05 |
---|---|
남기고 싶은 말 (0) | 2011.08.24 |
천강대인 (0) | 2011.08.24 |
조선왕조와 고려왕조의 계보 (0) | 2011.08.20 |
조선왕조 계보 (0) | 2011.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