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과 거울뉴런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공감'이라 한다. 단순히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 상대방이 되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해'와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공감'은 심리학 용어다. 심리학은 일정한 상태에서 관찰, 경향, 분류, 확률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사람의 행동, 의식 등을 추론하는 방식의 학문이다. 말 그대로 '마음'의 '이치'를 찾는 학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라 한다. 매우 어렵다. 마음의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고, 사용하는 도구 역시도 매우 관념적이기 때문에 그 이치를 찾는 것 또한 어려워진다. 실제 심리학 서적을 보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성이 떨어짐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즈음은 뇌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심리학을 '압도'한다. 그리고 심리학 이론들을 '가시적'으로 증명해 버린다. 심리학이 실제 '과학'으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뇌 과학은 MRI와 실험을 통해서 공감능력을 관장하는 세포를 물리적으로 찾아버린다. 공감능력을 관장하는 신경세포가 '거울뉴런'이다. 거울뉴런은 포유류에서 발견된다. 포유류 중에서도 사람에게 압도적으로 많다. 말 그대로 거울처럼 자신을 어떠한 사람이나 사물에 투영하는 세포라 정의할 수 있다. 격투기 경기를 보면 자신이 선수가 된다. 선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선수가 돼 버린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찔움찔한다. 이게 거울뉴런의 역할이다. 거울뉴런이 없으면 우리는 문화생활을 할 수가 없다. 인류가 문화를 즐기는 존재가 된 이유가 바로 거울뉴런의 존재와 양 때문이다.
저명한 침팬지 연구 학자 프란스 듀발은 더 놀라운 발견을 한다. 그의 실험은 아래와 같다. 끈이 있는 공간에 침팬지 한 마리가 있다. 그 끈을 당기면 바나나가 나온다. 바로 옆방에 침팬지 한 마리가 더 있다. 벽을 유리로 만들어서 서로를 볼 수 있게 만든다. 침팬지가 끈을 당겨 바나나를 먹으면 사육사가 다른 방의 침팬지에게 고통을 준다. 결과는 놀랍다. 끈을 당겨 바나나를 먹던 침팬지가 옆방의 고통당하는 침팬지를 본 후 다시는 끈을 당기지 않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심지어 죽음에 이를 정도로 배가 고파도 침팬지는 끈을 당기지 않았다. 거울뉴런의 작동에 의한 '공감'현상의 실존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공감하는 인간' - '호모 엠피타쿠스' Homoempartcus(Sympathize with Human)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도 아프다. 상대방을 '이해'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이제 영화 볼 때, 드라마 볼 때, 즐거울 때, 좋을 때만 거울뉴런이 작동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는 거울뉴런이 작동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나를 돌이켜 볼 일이다.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urikids&logNo=221336036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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