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입추의 여지가 없다' 의 뜻

인천혁신교육 선구자 2017. 10. 10. 15:32

                                                                        '입추의 여지가 없다' 의 뜻

 

어떤 곳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가득 들어차 있을 때 흔히 '입추의 여지가 없다'고 합니다.

송곳조차 세울 틈이 없다, 빈틈이 없다는 뜻이지요. 이 말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나오는 '입추지지(立錐之地)'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어요.

<사기>'골계열전' 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중국 초나라 때 우맹이라는 악사가 있었습니다. 우맹은 매우 현명하고 재주 많은 사람이었답니다. 당시 초나라 재상이던 손숙오는 우맹의 현명함을 높이 샀어요. 재상 손숙오는 왕을 도와 정치를 잘했지만 청렴결백한 성품 때문에 별다른 재산이 없었어요. 그런 손숙오가 큰 병에 걸려 죽게 되자, 아들에게 유언을 남겨요. "내가 죽으면 집안이 몹시 가난해질 것이다. 그러면 우맹을 찾아서 '제가 손숙오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여라". 손숙오가 죽고 난 뒤, 왕은 그가 세운 공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가족들에게 어떤 배려도 해 주지 않았어요. 손숙오의 아들은 땔감 장사를 해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손숙오의 아들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우맹을 만나 아버지의 유언을 전합니다. 그 뒤부터 우맹은 손숙오의 옷을 입고, 말투와 몸짓도 똑같이 흉내 내고 다녔어요. 그렇게 한해 지나자 모두 손숙오가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할 정도였어요.

 

어느 날 궁중에서 잔치가 벌어졌어요. 손숙오로 꾸민 우맹도 그 자리에 가서 왕의 장수를 빌었어요. 왕은 손숙오가 다시 살아온 듯 여기며 우맹을 반겼어요. 그리고 현명한 우맹에게 재상 자리를 내리려고 하지만 우맹은 아내와 의논해 보겠다는 답변을 미루다가 사흘 뒤에 왕을 만나 이렇게 말했어요. "아내가 말하기를, 초나라의 재상은 할 자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일찍이 손숙오는 충성스럽고 청렴결백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 아들은 송곳을 꽂을 만한 땅도 없이 땔감 장사로 생계를 잇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손숙오 대감처럼 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왕은 비로소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많은 땅을 주면서 위로하고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게 했다고 해요. 이 이야기에서 우맹이 말한 '송곳을 꽂을 만한 땅'이 바로 '입추지지'입니다. 한자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끌어다 자꾸 쓰다보니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어요.

 

또 하나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입추의 여지가 없다'에서 입추를 가을을 시작되는 절기인 '입추(入秋)'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두 말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지요. 우리말보다 한자를 즐겨 쓰다 보니 이런 혼란이 생긴 거에요.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기이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말이라는 주장도 있어요. 당시 권문세족이 온갖 편법으로 많은 땅을 차지하는 바람에 정작 농민들은 송곳을 꽂을 만한 땅도 없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