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 나이가 들면 ★

인천혁신교육 선구자 2017. 8. 24. 20:40

 

★ 나이가 들면 ★

어느 날 지인이 카톡으로 작가 미상의 <나이가 들면>이라는 시(詩)를 보내줬다.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이해할 줄 알았는데 이해하려 애써야 할 것이 많아지고,  나이가 들면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보이기 위해 더 긴장해야 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노인이 되기 위해선 젊을 때보다 더 많이 애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나이가 들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보다  더 힘써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에 의아해 하면서 한편으론 감사한 일로 여겨졌다. 제사 지낼 때 축문에 자주 등장했던 직함이 바로 ‘학생부근(學生府君)’이다.  ‘학생’이라는 말은 벼슬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거나,  깨우침을 위해  평생을 노력한 선비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는 ‘학생’이라는 직함만 얻어도 면세대상이요 그 외 많은 특혜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땅에 태어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  ‘학생’이란 단어를 그냥 유추해 봐도 알 수 있듯이,  인생의 깨우침을 위해 배움의 길을 놓지 않고 한평생 애 쓰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나는 얼마 전에 초등학교 교직을 내려놓고 33살에 늦깎이 수사가 된 어느 수도신부를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수도회에 들어가려면 ‘정주’(수도원에서 평생을 생활), ‘정진’(수도승다운 생활), ‘순명’(하나님과 이웃에게 순종)의 3가지 서원을 한다. 

 

그들은 새벽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기도와 노동을 평생 반복하다가 생을 마친다.  도대체 이란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겠는가.  하지만 그 수사는 1,200여 그루 배 밭농사를 통해 끊임없이 삶의 한계를  깨달게 하는 ‘겸손’를 배웠고,  또 세상의 온갖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이탈’의 진리를 수련했다고 한다.     

 

행복은 이렇듯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군더더기가 무언지를 알고 날마다 털어버리는 모습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그가 65년 수도원 생활을 통해 터득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전 재산이라고는 낡은 라디오 하나였음에도  자신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100세 시대 속에 장수(長壽)란 복이 아니라 짐으로 여기는 요즘에  그 수도사는 삶을 왜 그리도 단순화시켜야 하는지 왜 겸손과 이탈의 훈련이 나이 들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식사량도 줄어들고 잠도 설칠 때가 더 늘어만 가고 또 옆에서 누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더 이상 남의 일 같지 않음을 통해 나이 듦을 절감하게 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내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바꿔지고 있는 것들을 통해 마지막 순간을 어찌 생각해 보지 않겠는가.   이제 ‘똑똑하다’는 소리보단 ‘지혜롭다’는 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넌 할 수 있어!’ 대신에 ‘추해지지 말자!’는 말에 더 동감이 가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더불어 화가 나도 반사적으로 질러대던 자신이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낫지 하며 그냥 지나칠 때가 많아지면서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연민의 마음으로 쳐다보곤 한다.     

 

창문 밖에 나무 잎이 가려있으면 하늘과 별을 볼 수 없듯이,  생의 욕망과 아쉬움의 잎사귀를 떨쳐 낸  겨울을 앞 둔 나무만이 하늘과 밤에 떠 있는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생이 뭐란 말인가. 결국 인생은 함께 가는 것이었는데도  아직도 내 편견이 자꾸만 이웃과 함께함을 멀어지게 만들어  나이 들수록 미련하게도 더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땅의  삶도 중요하지만 인생은 누가 뭐래도 끝이 좋아야 좋은 것이기에  지금부터 이 땅에서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심연의 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에 저절로 겸손해 지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 시(詩)에서 나이가 들면 구체적으로 이사 갈 준비가 무엇인지 눈치 챘어야 한다.  나이 들어서는 젊을 땐 생각지도 못 했고 할 수도 없었던 일이 있었다.  “... 짙은 향기보다 은은한 향기가 폭포수보다는 잔잔한 호수가 화통함보다는 그윽함이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살가움보다는 무던함이 ..”   나이 들었다는 것은 이미 동해(東海)같은 청년기도 지났고 남해(南海)같은 중년기도 지났기에  이젠 서해(西海)로 비유되는 노년기엔  해야 할 일이란 삭기고 또 삭여야만 하는 것은  죽음 앞엔 폭포수나 또렷함보다는 그윽함이나 무던함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서해(西海)처럼 진정한 생명의 향기를 발해야만 죽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해의 향기는 향수도 아니요 힘도 아닌 약함에서 나온다.  젊을 땐 약함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극복되어야 할 모습으로만 여겼지만,  서해에서 약함은 벗어날 것이 아니라 약함 자체가 내 본래 민낯이기에 죽을 때까지 약함은 오히려 나답게 살게 할 은총임을 알면서 조금씩 미소가 생겨난다.   진정으로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는  약자를 이해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도울 길을 찾으며  무엇보다도 긍휼을 구하는 사람이 되면서 죽은 뒤에도 무슨 말을 들을지 조금씩 답을 알아가면서 미백의 여유를 얻게 된다.  2017년 8월 14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출처 : 한억만 목사 ponamc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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