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상식

수학여행 금지가 능사는 아니다(동아일보 2014.2.23.)

인천혁신교육 선구자 2014. 4. 23. 08:25

                                수학여행 금지가 능사는 아니다(동아일보 2014.2.23.)

                                                                                                                                                       김이재 문화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18, 19세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세계로 진출해야 했던 작은 섬나라 영국에서는 유럽대륙의 선진 문명을 체험하는 그랜드 투어열풍이 불었다. 영국을 이끌 지도자를 양성하는 이튼, 킹스, 해로 등 명문 사립학교에서는 세계의 자연·인문환경을 배우는 지리와 과학 등이 중요 과목이었고, 청소년들은 배를 타고 거친 바다로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여행을 통해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고 용기와 자신감을 길렀다.

 

답사와 체험활동을 중시하는 영국 교육의 전통은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솔자가 현지를 먼저 답사하여 안전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필수이다. 체험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교사와 인솔자는 현지의 위험요소를 목록화하고 지도에 표시한 후 미리 학생들에게 숙지시켜 예상되는 사고와 위험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가 교육과정에서 이러한 내용과 관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리교육의 비중이 낮은 것도 원인일 것이다. 학생이나 교사 모두 각종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지식이나 공간적 판단력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교육부가 1학기 초중고교의 체험학습 활동과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할 목적으로 급작스럽게 취해진 조치는 장기적으로는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대형 화재가 발생했으니 아예 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물론 가정에서도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학여행과 가족여행은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수학여행은 교육적 효과도 있지만,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소통하고 우정을 쌓는 시간이다. 아이들에게는 평생의 추억을 만드는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학여행을 금지하기보다는 안전한 수학여행을 강조하는 게 타당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는 여행의 풍부한 교육적 의미를 생각할 때 수학여행을 무조건 금지하는 조치는 매우 근시안적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집과 학원, 학교만 오가며 공부에 지쳐있는 학생들에게 우정을 기르고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수학여행을 갑자기 없애는 결정은 잔인해 보이기까지 한다.

 

대신 안전한 수학여행을 위해 교사나 인솔자가 여행 과정에서 예상되는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여 각종 사고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과정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일상생활에 잠재되어 있는 위험 요소를 미리 인지하고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급박한 재난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과정을 학교 현장에 전격 도입하면 좋겠다.

 

                                                                                                                                김이재 문화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