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잔인한 달'에 피는 희망
박영조 인천일보 오피니언
2014년 4월 8일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시인 T.S 엘리엇의 노래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말한 잔인함이란 하나의 역설이지만 실제로 4월은 잔인한 계절이기도하다.
4월이 되면 이제 높은 산봉우리의 잔설까지도 자취를 감추고 만다. 라일락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 있는 것들이 기지개를 켜며 감았던 눈을 뜬다. 그러기까지 긴 아픔의 세월이 있었다. 수많은 빛이 죽고서야 어둠이 거두어졌다.
그래서 4월의 환희 뒤에는 그런 아픔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꿈을 가지노라.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흑인과 백인이 손을 잡고 형제자매로 같이 지내온 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절망하지 말라. 그러므로 분노하지 말라. 꿈을 가진 자는 분노하지 않는다!"고 외치면서 멸시하던 백인들의 손을 잡고 울고 분노하던 흑인들을 부둥켜안고 울던 루터 킹 목사가 4월4일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어둠에 던져진 빛, 그는 갔지만 그를 통해 오늘날 흑인과 백인들이 나란히 버스를 타고 간다. 그는 갔지만 많은 삶이 부조리한 현실에도 절망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꿈을 싣는다. 잔인한 흉탄(兇彈)은 그를 죽였으나 불멸의 꿈은 그의 죽음에서 라일락처럼 솟아올랐다.
본 회퍼(D.Bonhoeffer) 목사는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로 히틀러에 저항하는 투쟁을 하다가 39세의 젊음을 사형대의 제물로 바쳤다. 그의 죽음 역시 라일락이 피는 4월9일이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본 회퍼의 죽음은 독일뿐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자유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고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본 회퍼의 마지막 저서인 <옥중서신>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하나님, 나는 내 백성의 자유를 위해 영원 속으로 걸어갑니다. 나에게 용기를 주신 하나님, 나는 이 백성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지려고 합니다. 주님처럼 장하지는 못하지만 비겁하지는 않게 도와주십시오. 오, 내가 주님께 갑니다. 내 지팡이는 쓰러졌습니다. 주님이 붙들어 주십시오" 그도 4월에 갔으나 그의 길을 따라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줄을 잇고 있다.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동서양을 거쳐 가장 존경을 받는 이가 아브라함 링컨이다. 그로 인해 수천만명의 '짐승'이 인간으로 됐다. 당시 노예는 한갓 짐승이었다. 링컨은 정치적 위험 부담과 신변의 위협에도 노예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오늘날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게 한 사람이 링컨이었다. 그의 별명이 어네스트 에이브(정직한 아브라함)였다. 그런 링컨이 쓰러진 날도 4월15일이었다.
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에서 일제의 독침을 맞아 순교한 날이 4월21일이고, 나환자촌의 아버지, 사랑의 화신이었던 손양원 목사님이 공산군의 총탄에 순교한 날도 4월28일이었다. 정말로 4월은 엘리엇의 말대로 잔인한 달이다. 가장 소중한 꽃들이, 별들이 밀알들이 떨어져 죽어버린 달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밀알은 죽지 않는다. 30개, 60개, 100개로 다시 솟아나는 달이 역시 4월이다.
예수님 역시 4월에 죽었다. 그 부조리한 십자가를 지고 온몸에 피멍이 든 채로 예수님도 라일락 향기 풍기는 갈보리 언덕을 오르셨다. 그의 아픔이 있었기에 오늘날 인류의 죄악과 상처가 치유함을 받은 것이다. 4월은 피의 달이며, 부조리한 달이고 잔인한 달이다. 그럼에도 4월이 있었기에 새 생명의 환희가 있다.
과연 '4월은 잔인한 달'일까
김경룡 인천일보 칼럼
2010년 04월 15일 (목)
일찍이 시인 엘리어트는 '황무지' 첫 머리에서 이렇게 운을 떼었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고.
화사한 꽃 대궐의 정경을 어찌 모질다 했을까. 아마도 씨앗은 트면서 열이 오르고 나무는 가지치기의 아픔을 감내해야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는 역설이리라. 거친 표현 뒤에 강인한 삶을 자극하고 나아가서 '사랑의 매'를 일깨우고자 하는 메시지라 한다면 아전인수의 해석이라 할까사자는 귀여운 새끼를 낭떠러지에 밀어 던지기를 서슴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는 애정 결핍이 아니라 새끼의 홀로서기를 위한 비정한 충격 조치라 할 것이다.자극이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어획물을 산지로부터 장거리 운송하는 과정에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피라니아 한 마리를 집어넣는다는 이야기다. 좁은 수조 안에서 스트레스 받고 떼죽음 당할 확율에 비하면 피라니아가 설쳐 입히는 피해 쯤 감수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아마존 강 원산인 피라니아는 몸집은 작지만 무리 지어 덤비면 아무리 큰 동물이라도 적수가 안 되는 악명 높은 물고기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물고기의 위기 탈출 과정에서 아드레날린 방출이 바로 긴 여정에서 살아남을 소중한 자극제라는 점이다.그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거쳐 온 4월을 되짚어 보노라면 불의에 대항한 거족적 아드레날린 분출에 비유됨직 하다.반세기 전 독재 정권을 밀어낸 4월의 함성이야말로 이 땅의 자유 민주의의를 위한 소중한 파종이니 다름 아니니 말이다. 때마침 지역내 계간지에 실린 '인천의 4·19혁명 특집 화보'를 보면서 일련의 기억을 주마등처럼 떠올려지는 까닭이다.1960년 그 당시 B여고서 교편을 잡던 나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이 행여 거친 단속에 다칠세라 대열을 떠날 수가 없었다. 뿐 아니라 사태가 긴박해져 부상 학생이 속출한다는 소식에 대표 학생(JRC)을 이끌고 동대문 이대 부속 병원을 찾아 나섰다.서울역에서 남대문 앞에 이르자 계엄군이 엎드려 총을 겨누고 있었고 멀리서 총성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반나절 만에 병실에 들어서자 부상자들은 지방 여고생들의 '만용'에 감동하는 빛이 역력했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잊지 못했던 정경은 일부 난폭한 시위자더러 '질서'를 외치며 자제를 당부하던 선도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 독재를 몰아내고도 들뜸이 없이 내처 치안 공백과 거리 청소에 솔선했던 당시의 시위문화를 상기컨대 요즘과는 천양지차이다. 서정주 시인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고 읊은 바 있다.역사를 되짚어 보노라면 3·15, 4·19, 5·16, 6·25 등, 피를 토하는 아픔의 역정을 이어왔건만 소쩍새는 울음을 멈추지 못한다.그나마 반세기 전 4월의 기억이 희미해 간다 싶었는데 느닷없는 천안호 참사로 멍든 가슴에 눈물 마를 날이 없으니…. 어찌하랴. 순탄한 일상생활만이 심신에 이바지 하는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때로 비정할 망정 극기심을 키워준 바탕에는 오히려 슬픔과 역경을 이겨낸 자취를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며칠 뒤면 4·19 50주년이거니와 이제 그 4월을 잔인한 달로 여기는 시각은 거두어드릴 만큼 성숙했다고 자부한다. 오로지 시련은 있어도 좌절치 않고 비정한 충격을 순화하는 역발상이 바라마지 않는 4월 꽃 그늘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