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Normandie)
노르망디 [Normandie]프랑스 지역 |(영) Normandy : 프랑스 북부의 망슈·칼바도스·오른·외르·센마리팀 주들을 포함하는 유서깊고 문화적인 지방.
개요
프랑스
옛날의 노르망디 지방과 같은 지역이다.
<고대역사>
센 강 및 외르 강 계곡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그곳의 켈트족(族) 거주민들이 BC 56년에 카이사르에 의해 정복되어, 이 지방은 결국 로마의 속주 갈리아루그두넨시스세쿤다가 되었다. 주민들은 3,4세기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으며, 5세기 후반에는 프랑크족 메로빙거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가 프랑크족 왕국인 네우스트리아의 일부가 되었다.
해안은 8세기부터 고대 스칸디나비아 해적들인 바이킹의 침략을 받아 거듭 황폐해졌다. 노르망디 지방의 지배자였던 카롤링거 왕조가 약해지면서 바이킹의 약탈행위는 더 멀리 내륙까지 뻗쳤고, 마침내 프랑스의 단순왕 샤를 3세는 루앙 주변 영토와 센 강 어귀를 생클레르쉬르레프트 조약(911)에 의해 바이킹 최대 우두머리인 롤로에게 양도했다. 롤로 지배하에 많은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이 지방에 정착하기 위해 이주했으며, 그들은 프랑스의 언어·관습·종교를 받아들였다. 노르만인(人)인 이들 바이킹들이 정착한 지방은 노르망디로 알려지게 되었다. 롤로의 뒤를 이은 개신교 노르망디 공(公)들은 일련의 전쟁을 통해 주변영토를 획득함으로써 매우 강성해져서 이들이 차지한 영역 내에서는 사실상 프랑스 국왕과는 무관하게 지배권을 행사했다. 노르망디 공이며 롤로의 먼 계승자인 윌리엄 공이 1066년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잉글랜드의 정복왕 윌리엄 1세가 됨으로써 잉글랜드와 노르망디 지방을 자신의 지배하에 통합했다. 1087년 윌리엄 1세가 죽자 그의 아들들이 계승권을 둘러싸고 다투면서 노르망디 공은 곧 잉글랜드 왕이라는 등식은 깨졌다. 형제간의 싸움은 잉글랜드 왕 헨리 1세가 탱슈브레 전투에서 그의 형제인 노르망디 공 로베르를 패배시킨 1106년에 끝나고, 노르망디 공의 계승권도 당분간 잉글랜드 왕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1144년 앙주의 백작인 제프리 플랜태저넷이 노르망디를 정복했다. 그는 1150년에 이 공작령을 그의 아들 앙리에게 양도했고, 앙리 공은 1154년 잉글랜드 왕 헨리 2세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노르망디 지방은 서로 멀리 떨어진 영토들로 엮어진 소위 앙주 제국의 일부가 되어 헨리 2세와 그의 뒤를 이은 잉글랜드 왕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로 노르망디는 앙주가의 잉글랜드 왕들을 상대로 싸우는 카페 왕조의 프랑스 왕들에게 제1의 쟁탈목표가 되기도 했다. 노르망디 지방에 대한 지배권을 잉글랜드 앙주 왕가 지배자들로부터 빼앗기 위해 프랑스 카페 왕조의 루이 7세와 존엄왕 필리프 2세가 벌였던 군사적·외교적인 투쟁은 1204년 필리프 2세가 이 지방을 완전히 정복·합병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파리 조약(1259)이 체결되고서야 잉글랜드 왕 헨리 3세가 이 지방에 대한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여 노르망디 공작령을 프랑스에 빼앗겼음을 인정했다. 영국은 이후로 백년전쟁 중인 15세기초에 이 지방을 다시 정복했으나, 포르미그니 전투에서 승리한 프랑스군이 1450년 영구적인 지배권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