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센제국 [Saracens]
사라센제국 [─帝國, Saracens]
7세기에서 동쪽은 13세기 중반까지, 서쪽은 15세기 말까지 인도 서부에서 이베리아반도에 이르는 지역을 무대로 흥망한 이슬람 제왕조(諸王朝)의 총칭.
사라센이라는 국호를 가진 왕조가 존재한 것은 아니며, 이슬람제국 또는 이슬람교주국(敎主國)의 별명으로 사용되었다. 사라센이란 말은 1세기경부터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사용한 아라비아인에 대한 호칭인 사라세니(Saraceni)에서 유래하였다. 처음에는 한 부족만을 가리켰으나 뒤에는 아랍족과 이슬람교도까지도 뜻하게 되었다.
예언자 무함마드(570?∼632)는 40세 초에 이슬람 교의(敎義)를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메카의 부유층은 알라가 유일신(唯一神)임을 주장하는 이 교의에 반대하여 박해가 심하였으므로, 622년 9월 신도와 함께 북방의 메디나로 옮겨갔다. 이것을 헤지라라고 하며, 이슬람교단(敎團)이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라센제국은 메디나의 이 자그마한 이슬람교단이 발전한 것이다. 630년 무함마드는 신도군(信徒軍)과 함께 메카를 정복한 뒤 곧 아라비아반도의 대부분을 이슬람교의 세력하에 통일하였다.
632년 그가 메디나에서 병사하자, 예언자의 후계자(칼리프)로서 덕망 있는 교단의 장로인 아부 바크르를 선출하였다. 이때 무함마드의 종형제이며 사위인 알리가 선출되지 않은 것이 뒤에 교단이 분열하는 원인이 되었다. 아부 바크르는 단기간의 재임 중에 아랍 제부족(諸部族)의 이반(離反)을 평정하고, 다시 비잔틴 제국령(帝國領)인 시리아와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본거지 이라크에 원정군을 파견하였으며, 대정복사업은 제2대 칼리프인 우마르의 재임 중(634∼644)에 성공을 거두었다.
7세기의 630∼640년대에는 아라비아의 제부족이 이슬람의 교의와 칼리프 밑에 힘을 합하여 동쪽으로는 이란에서, 서쪽으로는 이집트의 서단(西端)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룩하였고, 이라크에서는 바스라와 쿠파, 이집트에서는 푸스타트 등의 기지도시(基地都市)를 건설하였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마침내 멸망하고 비잔틴제국의 세력도 토로스산맥 너머 소아시아로 후퇴하고 말았다. 메디나에서는 우마르 뒤에 오스만, 알리로 이어지는 도합 4대의 정통(正統) 칼리프시대가 계속되었는데, 그 사이에 이슬람교단 내에서 세력 다툼으로 분열의 징조가 나타났다.
661년 제4대 칼리프 알리가 이라크의 쿠파에서 이단파인 할리주교파(敎派)의 자객에게 피살되자 이번에는 우마이야가(家)의 무아위야가 칼리프가 되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도읍하였다. 무아위야는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칼리프의 세습제를 실시하여 우마이야왕조를 창업하였고 이 왕조는 750년까지 계속되었다. 정복사업은 이 왕조 때에도 계속되었는데, 8세기 전반에는 동쪽에서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북서부, 서쪽에서 북아프리카를 침략하고, 711년에는 이베리아반도에 상륙하였으며, 732년 오늘날의 프랑스에도 침입하였다.
또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도 여러 번 진격하였다. 그러나 이 왕조도 붕괴되고 무함마드의 숙부 아바스의 자손에 의하여 아바스왕조가 성립하였다. 이때 우마이야왕조의 일족이 에스파냐로 도피하여 건설한 왕조를 후(後)우마이야왕조라고 한다. 신왕조는 처음에 이라크의 쿠파에 근거지를 정했다가, 762년부터 티그리스강 중류의 바그다드에 도읍을 옮겨 1258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대에 이란계의 문화가 이슬람문화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어 찬란한 사라센문화가 개화하였다. 그러나 코르도바에 도읍한 후우마이야왕조를 비롯하여 서쪽에는 이드리스왕조·아글라브왕조가, 동쪽에는 타히르왕조·사파르왕조·사만왕조의 지방정권이 잇달아 독립하여 아바스왕조의 직접지배지는 나날이 축소되어 갔다. 10세기경부터는 이라크 지방에 국한되었는데 그것마저도 실권은 부이왕조에 맡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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